[스크랩] [샹송] En Ecoutant La Pluie (빗줄기의 리듬) - Sylvie Vartan
En Ecoutant La Pluie (빗줄기의 리듬) - Sylvie Vartan
캐스케이드 명곡 "Rhythm of the rain"을
샹송가수 실비 바르땅이 부릅니다
J'ecoute en soupirant
la pluie qui ruisselle,
frappant doucement sur mes carreaux
comme des milliers de larmes
qui me rappellent que
je suis seule en l'attendant
유리창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빗소리를
저는 한숨을 지으며 듣고 있어요.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과도 같이
그 빗줄기는 그를 기다리며
쓸쓸하게 있는 저를 생각하게 해요.
le seul garcon
que j'aime n'a pas su comprendre
que lui seul comptait pour moi
et pres de ma fenetre,
je reste a l'attendre
en guettant le bruit de ses pas
제가 사랑하는 유일한 그 남자는
저에게는 오직 그 만이
중요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답니다.
그런데도 저는 창가에서 계속 그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의 발자국 소리를 애타게
기다리면서 말이에요.
pluie oh dis-lui
de revenir un jour
et qu'entre nous renaisse
un grand amour
le passe ne sera plus
qu'un triste souvenir
오, 비야,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라고 그에게 말을 해주렴.
다시금 우리 사이에
커다란 사랑이 되살아났으면
과거는 슬픈 추억밖에는
지니지 못할거에요.
comment lui dire que moi,
je l'aime trop
qu'il me manque
et que j'ai le coeur gros
et que pour moi
l'amour sans lui ne compte pas
저보다도 그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어떻게 말을 할까요?
그리고 커다란 사랑을 간직하고 있고
저에게 있어 그이 없는 사랑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그에게 말을 할까요?
J'ecoute en soupirant
la pluie qui ruisselle,
frappant doucement
sur mes carreaux
comme des milliers de larmes
qui me rappellent
que j'etais seule en l'attendant
유리창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빗소리를
저는 한숨을 지으며 듣고 있어요.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과도 같이 그 빗줄기는
그를 기다리며 쓸쓸하게 있던
저를 생각나게 한답니다
'실비 바르땅'은 프랑스 가수이지만
'에디뜨 삐아프 (Edith Piaf)'나 눈이 못생겨 항상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미셸 뽈나레프 (Michelle Polnareff)'처럼 전통적인 '샹송가수'는 아니고,
'프랜치 팝싱어'로 구별해도 무방합니다.
다시말해서, 프랑스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샹송가수는 아니라는 걸
참고로 말씀드리구요,
'실비 바르땅'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었던 프랜치 팝을 개척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녀는 1944년 8월15일 불가리아 소피아 태생으로 8세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고향을 떠나 프랑스로 탈출하였다.
소피아는 유럽 남동부에 위치한 불가리아 수도이다.
그녀는 1963년에 발표한 'Quand Le Film Est Triste'가 각종 인기차트를
석권하면서 일약 젊은 세대의 우상으로 떠오른다.
무드 가득하고 문학적인 샹송보다는 과감하게 록큰롤을 혼합한 호쾌한 음악,
기존의 여가수들이 보여주던 다소곳하면서도 나긋나긋한 이미지를 과감하게
탈피한 그녀의 모습은 당시 젊은이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적인 태도와
부합되어 최고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 뭇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던
프랑스출신 미남스타 가수인 '조니 할리데이'와 사랑에 빠진다.
이는 그 당시 대단한 화제를 불러모으며 1965년 결혼을 한 후
그 이듬해 여름에 아들 다빗 할리데이를 낳았다.
다빗 할리데이는 부모의 음악재능과 빼어난 용모를 그대로 물려받아
현재 인기가수로 맹활약 중이다.
그러나, 이토록 행복한 '실비 바르땅'을 운명의 신이 질투라도 하듯
그녀에게 '안나 게르만'과 흡사한 모진 시련이 다가온다.
1968년, 1970년 두 차례나 겪은 대형 교통사고는 그녀의 가수생명을
위협할 정도였다.
재기가 어렵지 않겠냐는 세간의 예상을 불굴의 의지로 깨뜨린 그녀는
지금 흘러나오는 불후의 명곡 'La Maritza'를 발표한다.
'La Maritza(라 마리짜)'는 불가리아에 있는 '실비 바르땅'의 고향
이스크레츠를 끼고 흐르는 강인데, 불가리아의 릴라 산맥에서 발원해
발칸 반도를 가로질러 흐르는 불가리아를 상징하는 강이다.
따라서 그녀 가족에게 마리짜강은 자유를 그리는 희망의 상징이었는데,
이 노래는 단순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는 슬픈 노래이지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라는 가사 속에서 'Sylvie Vartan'이 느껴야 했던 것은
아픈 추억들뿐이었답니다.
1968년 파리에서 녹음한 이 곡은 흘러온 시간과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채울 길 없는 목마름, 무엇보다도 돌아갈 수 없는 조국에의 향수와 자유,
그리고 민주화를 염원하는 등 이런저런 회한들이 얽혀져 있는 내용들이
노래의 주 가사를 이루고 있다.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를 어린시절 부모 손에 이끌려 조국인 불가리아를 떠나
프랑스로 망명을 온 후 프랑스인으로 살았지만
한번도 자신이 불가리아인이란 걸 잊지 않았다고 한다.
1989년 소련이 붕괴되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멋대로 날뛰던 공산주의
독재자들이 무너지면서 조국 불가리아가 자유화되자 1990년 10월 고향을
떠난 지 38년이 지난 40대후반 중년 나이에 꿈에서도 그토록 그리던 조국
불가리아를 찾았다.
동터오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아침에 모국 불가리아에서 가진 '실비 바르땅'의
귀향무대는 가슴이 벅찼고,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기념하는 축제였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국립극장에서 콘서트에서 파란만장했던 지난 날을
돌아보듯 가사를 음미하며 원숙하고 감회어린 목소리로 이 곡을 노래하였고,
조국의 청중들과 눈물의 회한을 풀면서
" 너무나도 오랫동안 기다려온 오늘입니다. 철없던 8살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여러분들을 떠났기에 지금 내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참고 있는지 여러분들은
상상이 안될 겁니다. 이제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그 아름다웠던
유년기를 되찾은 느낌입니다. 똑같은 집들과 풍경들, 어릴 적 내가 놀던
마리짜의 강물도 여전하겠지요.마리짜는 영원한 나의 강입니다 " 라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청중들에게 했던 이 말은 그녀의 모든 애환이 다 서려있지요.
그녀는 이 곡을 부르는 도중 그만 한없이 눈물을 흘려 공연이 잠시
중단되었다고 하는데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제 마음까지 서글프게 하고 있습니다.